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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reza shayestehpour

7) THE CHARIOT 전차
레굴루스

                                                    
                                                               

  린처

백야의 선장

 

 익숙한 건 달갑지 않다. 매일이 같은 날이 없다고 해도 무방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것이 필요한 법이다. 레굴루스는 자신이 너무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렀음을 깨달았다. 전등 빛이 꽃병을 투과해 부서지는 걸 멍하니 봤다. 부서지는 빛 조각은 선글라스를 필요로 할 만큼 눈부시지 않았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템스강을 그리워함을 알았다. 잔잔해 보이는 물결에도 부서져 반짝거리는 햇빛을 상기했다.

 

 "미스터 APPLe, 여기서 뛰면 혼날까?"

 "저 APPLe이 생각하기에는 그럴 것 같군요. 뛰고 싶으신가요, 캡틴?"

 "아니."

 

 뛰고 싶었다면 진작에 뛰었을 것이다. 혼이 나는 결말도 잡혀야만 성립하는 것이고, 레굴루스는 지루하게 걸어 다니거나 서류나 컴퓨터를 붙잡는 이들을 따돌릴 자신이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마도술이 없더라도 말이다. 만약 눈앞의 이가 소네트였다면 레굴루스는 하지도 않을 행위에 관해 묻지 않았을 것이다. 버틴이었다면 질문을 던졌겠지만 답을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녀도 재단의 인간이어서다. 레굴루스는 성 파블로프 재단의 인간에게 이해와 공감을 바랄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그러니 그녀의 곁에 남는 가장 큰 이해자는 미스터 APPLe인 셈이다. 각 개체는 완전히 동화될 수 없으나, 함께 살아온 시간은 상대를 더듬게 만든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외부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저 APPLe이 가는 법을 알아볼까요?"

 "좋은 생각이야, 미스터 APPLe. 당장 알아보도록!"

 

 성 파블로프 재단은 바람조차 불지 않는다. 레굴루스는 이런 답답한 공간에 익숙해져 가는 이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규칙, 명령, 이사회. 여긴 흡사 자신의 숨통을 틀어막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숨을 쉬지 않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가? 그러니 그녀는 바람을 느끼기 위해 달려야만 하는 법이다. 외딴 배 하나만을 거처 삼아 흘러넘치는 레코드판을 부여잡으며 쫓겨 다니면서도 로큰롤과 자유를 갈구하는 삶을 살지 않았던가.

 

 "알겠지만, 소네트에게는 비밀로 하도록 해. 또 무슨 잔소리를 할 지 모른다니까."

 "알겠습니다, 캡틴."

 

 밖에 나가게 되면 뭘 해야 하지? 새로운 로큰롤 플레이리스트를 짜야 할 지도 모른다. 재단에도 이 몸의 해적방송의 열성적인 팬이 생기면 곤란한데. 밖을 향한 원대한 탈출 계획의 은닉을 위해 이미 해체와 조립을 반복한 기계를 만지작거렸다. 미스터 APPLe을 기다리는 시간이 한없이 길다.

미스터 APPLe은 혼자 돌아오지 않았다. 옆에 버틴이 함께 있었다.

 

 "이용 중일 때를 제외하고는 신청만 한다면 잔디밭에 가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신청서? 그럼 잔디밭에 가는 것도 허락이 필요하다는 거야?"

 "허가가 나지 않는 경우는 없어. 그냥 형식적인 절차인 거야."

 

 맹세컨대 레굴루스는 템스강에 로큰롤 APPLe호를 띄울 때 허락 같은 걸 받은 적이 없다.

 

 "신청서는 제출했어. 가자."

 "아하, 너도 잔디밭에 가고 싶었구나?"

 "그런 건 아니지만... 혼자 갔다가 경계를 넘으면 폭풍우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결국 감시자를 자처하겠다는 말이다. 버틴을 따라가는 동안 대화는 없었다. 하려면 할 수 있었으나 버틴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만약 그녀가 자신과 함께 해적방송을 했다면, 같은 시대를 향유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폭풍우가 없이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이해를 구했을까.

 

 "여기야, 레굴루스."

 

 미미하게 바람이 분다. 레굴루스는 땅을 박차고 내달렸다. 가만히 있어도 머리칼이 헝클어지는 게 기꺼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잔디밭 한가운데는 로큰롤이 울려 퍼질 여건이 마땅치 않기에 레굴루스는 기억나는 대로 온갖 노래를 불러댔다. 버틴을 그걸 멀리서 지켜봤지만 미스터 APPLe은 옆에서 함께 몸을 흔들었다. 오, 미스터 APPLe, 오늘따라 더 윤기 있어 보인다!

벌러덩 누우면 전등 빛으로 밝힌 하얀 천장이 아닌 파란 하늘이 보였다. 템스강의 색은 하늘을 따른다. 그러니 하늘을 보면 자연스레 템스강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미스터 APPLe, 돌아가면 멀리 떠날까?"

 "템스강을 넘어서요?"

 "그래! 킹스 로드에서 음반을 잔뜩 사서 떠나는 거야."

 

 그녀는 하늘 위에서도 바다를 가르는 로큰롤 APPLe호를 그릴 수 있다. 그래, 그들은 정든 영국에 작별을 고하고 떠나는 거다. 낮에서 낮으로, 밤에서 밤으로 가는 거다. 영원한 하루. 레굴루스는 다시 시간이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지구를 향한 하나의 측정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미스터 APPLe, 해가 지지 않으면 어떨까."

 "백야 현상을 말하는 건가요, 캡틴?"

 "로큰롤 APPLe호가 태양을 쫓아다니는 거야."

 

 영원히 한낮에 살 수 있을까. 한낮에 보이는 해가 실은 반대편의 밤에서 가라앉은 부산물임을 알면서도 낯설게 여겼는데, 영원한 한낮 아래 로큰롤을 트는 우리는 태양과 똑같이 실은 나아간 것 뿐인데도 떠오르고 가라앉는 존재가 되는 걸까. 그렇게, 어디를 가게 되는 걸까.

 

 "캡틴, 저 APPLe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로큰롤 APPLe호의 선장이 자신에게 지독히도 외로워 보였다 말하면 캡틴은 깔깔 웃다가 그건 로큰롤이 부족해서라며 디제잉을 준비할 것이다. 실제로 레굴루스는 자신이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캡틴은 생각하는 거다. 자신과 둘이 영원히 바다만을 떠도는 미래를. 그녀는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상상만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으며, 실제로는 예상 이상으로 더 즐거워하며 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미스터 APPLe은 자신이 하는 말이 쓸데없는 참견임을 알면서도 그녀에게 이해를 구하는 거다. 친절한 선장은 항해사가 이해를 구할 때, 이해하지 못해도 언제나 고려해주니까.

 

 "계속해서 바다를 돌아다니면 새로운 로큰롤을 놓칠지도 모릅니다. 물자가 다 떨어지면 공급도 필요하죠. 그리고, 새로운 청취자들도 캡틴을 알게 되면 오래 해적방송을 듣고 싶어 할 겁니다."

 

 레굴루스는 미스터 APPLe과 함께 배를 타고 방랑하고, 경찰에게 쫓기며 해적방송을 했다. 그는 간혹 레굴루스의 곁에 자신을 비롯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한다. 억측일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녀가 고독을 모르는 건 이때까지 그녀가 이해를 구한 상대가 자신 뿐이기에 그런 것인지 생각한다. 태양만을 쫓아 단둘이 망망대해를 헤쳐 나간다니, 이 얼마나 외로운 삶인가.

그럴 때 미스터 APPLe은 자신의 선장이 한참 어림을 깨닫는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발견한다. 그러니 제일 친한 친구이자, 항해사는 어디든 선장을 데려간다. 그녀가 하고 싶은 모든 것에 함께 한다. 선장에게 새로운 항로를 알려주는 것도 그의 할 일이다.

 

 "새로운 로큰롤을 놓치는 건 곤란한데... 거기에도 오토바이를 빌려줄 사람이 있겠지?"

 "물론이죠, 캡틴."

 

 그저 사랑하는 것들을 쫓으며 한가득 껴안는 게 전부인. 공해에 남은 유일한 해적 라디오의 기반에는 오로지 애정만이 있었다 말하면 사라진 해적 라디오의 주인들은 뭐라 말할까. 미스터 APPLe, 로큰롤은 사라지지 않아. 그들은 그저 로큰롤을 사랑하는 방식이 바뀐 것 뿐이지!

하지만 레굴루스는, 그의 선장은 그만두지 않는다. 그들처럼 그만두기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것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경찰에게 쫓기며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로큰롤 APPLe호와 레코드, 미스터 APPLe 뿐이다. 몸이 부서지도록 아주 넓은 세계를 뛰어다니는 레굴루스가 쌓아 올린 세계는 아주 작고 견고하다.

 

 "좋았어! 신인류사 같은 기업을 발견하는 거야. 이전에 제보하면 바이크의 최신부품을 바꿀 수 있는 정도라고 했으니까... 킹스 로드에서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으면 금방일지도 몰라, 미스터 APPLe!"

 

 선글라스 너머로 빛나는 작은 태양을 보며 미스터 APPLe은 항로를 생각한다. 그저 파도에 실려 떠돌아다닐 수도 있으나 영원히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그저 흘러가는 배는 결국 뒤집힌다. 위대한 해적 레굴루스 캡틴에게 뒤집히는 배는 어울리지 않다. 일대에 울려 퍼지는 로큰롤의 중심만이 어울릴 뿐이다.

태양계의 유일한 별인 태양. 광활한 바다 위 떠 있는 하나뿐인 별 APPLe호. 영원한 한낮. 백야의 밤.

 

 "여기는 로큰롤 APPLe호!"

 

 태양을 이끄는 전차의 선장, 캡틴 레굴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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